메타버스와 돈의 미래
EBS 화제의 강의 ‘오태민의 나만 모르는 비트코인’을 원작으로 한 책이 출간됐다. 비트코인은 중앙 권력이나 중간 상인이 없이 사용자에 의해 작동하는 새로운 지불 시스템이다. 비트코인은 정상적인 거래가 아니면 누구도 바꿀 수 없는 장부로서 오직 프로그램이 인정한 거래만을 기록하면서 장부를 고치고 있으므로 이상적인 장부에 가깝다. 책 속에서 우리는 왜 비트코인이 앞으로도 계속 존재할 수밖에 없는지 비트코인의 기본 개념과 궁금증들을 하나하나 알기 쉽게 비유와 예를 들어 설명하면서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 작가를 만날 수 있다. 저자는 이상적인 화폐가 비트코인에 가까운 성격을 갖는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운명이 십수 년 전부터 갈라지고 있으며 앞으로도 갈라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책은 지정학적 자산으로서의 비트코인을 이해하고 이상주의(메타버스)에서의 돈의 미래를 살필 수 있게 한다.
오태민 지음ㅣ혜화동ㅣ206쪽ㅣ1만9800원
슈퍼 팩트
‘파이낸셜 타임스’의 수석 칼럼니스트 팀 하포드 저서. 이 책은 누구나 쉽게 따라 할 수 있도록 ‘슈퍼 팩트 십계명’으로 정리해 자세히 풀어냈다. ‘타임스’ 등 전 세계 주요 언론사들은 ‘최고의 통계 지침서’라는 평과 함께 ‘올해의 책’으로 선정했다. 지난 2019년 집필 과정에서는 “경제적 이해 증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영제국 훈장도 받았다. 그의 책과 칼럼은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접하지만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경제 원리에 대한 궁금증을 구체적인 사례로 쉽게 설명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책에서는 ‘세상의 진실과 거짓을 한눈에 간파하는 강력한 10가지 법칙’을 소개했다.
가짜뉴스가 넘치고, 기업가와 정치인의 말은 미덥지 못한 상황에서 투자 등 중대한 선택을 앞두고 어떻게 할 것인가. TV와 신문, 웹사이트부터 소셜미디어까지 눈길을 끄는 그래픽 이미지에 둘러싸여 있다. 경제 유튜브와 금융 보고서의 화려한 도표들은 믿을 만할까. 저자는 이 모든 물음에 대해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숫자와 감정”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행동경제학과 심리학에 기반한 다양한 실험 결과와 통계로 명쾌하게 이를 증명한다. 나아가 감정에 지배되지 않고 오히려 감정을 지배하며, 왜곡되고 편향된 숫자를 배제하고, 명확한 팩트를 발견하는 방법을 전달한다. 이로써 팩트뿐 아니라 ‘보이지 않던 팩트’까지 발견할 수 있게 된다고 강조한다.
최종적으로는 초예측을 가능하게 하며 성공적인 투자 전략을 수립할 수 있게 한다. 이것이 바로 저자가 말하는 팩트를 넘어선 팩트, ‘슈퍼 팩트’다. 이 책은 자신만의 탁월한 시각을 가지고 세상의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는 지침을 제공한다.
팀 하포드 지음ㅣ세종서적ㅣ376쪽ㅣ2만1000원
로봇의 지배
베스트셀러 '로봇의 부상'의 저자 마틴 포드가 이번에는 인공지능(AI)이 미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책을 펴냈다. 저자는 신작 '로봇의 지배'(시크릿하우스)에서 AI 연구가 현재 어느 단계에 도달했는지 살펴본다. 앞으로 AI가 우리의 노동, 경제, 사회, 국제, 정치, 문화, 생활에 어떤 영향력을 미칠 지에 대해서도 다면적으로 분석한다. 미래학자이자 기술 현실주의자인 저자는 로봇공학과 AI의 발전과 이러한 기술 발전이 미래의 경제, 사회, 문화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현실적 비전을 제시한다.
기술 현실주의자답게 AI가 인류 문명을 바꾸는 유일무이한 강력한 기술임을 인정하면서도 AI가 부상하며 나타나는 위험에 대해서 응집력 있는 대응이 시급함을 주장한다. 저자가 2015년 출간한 '로봇의 부상'에서는 AI의 진화와 일자리와 경제 문제에 대해 심도 있게 예측했다. 저자는 전작에서 주장했듯, 신작에서도 AI와 로봇이 계속 발전할수록 노동인구 대부분이 결국 뒤처지는 위험에 처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코로나 팬데믹과 그에 따른 경제 침체가 AI가 노동시장에 끼칠 영향력을 가속할 것으로 믿는 타당한 이유를 다양한 데이터와 함께 제시한다.
폭스 포퓰리즘
미국 폭스뉴스는 전국적인 시청망을 구축하는 데 성공한 첫 보수 방송사다. CNN과 MSNBC의 시청률을 합한 것보다 높은 시청률을 기록할 만큼 상업적으로 성공했다. 2010년 대통령선거 때는 공화당에 미치는 영향력을 설명하기 위해 '폭스 프라이머리'라는 용어가 생겼을 정도로 정치적으로도 막강한 힘을 지녔다. 뉴욕시립대 스태튼아일랜드컬리지 미디어문화학과 부교수인 저자는 폭스의 이 같은 성공 요인을 추적한다. 저자에 따르면 폭스뉴스는 다른 보수 언론과는 달리 당파성을 노골적으로 보이지 않았고, 주요 타깃이 보수 시청자라는 사실 역시 명시적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오히려 대중 친화적인 행보를 보였다. 폭스뉴스 방송인들은 처음부터 대중에게 친숙한 페르소나를 만들었고, 노동계급 문화에 애정을 쏟았다. 이 과정에서 자신들을 노동계급과 똑같은 문화적 감수성을 지닌 사람, 사회적으로 동등한 위치에 있는 사람으로 연출했다. 저자는 "타블로이드적인 자극성과 대중 친화적인 윤리의 혼합은 폭스뉴스로 하여금 자신의 시청자를 진정한 노동계급 다수로 자리매김하게 해 주었고, 이를 통해 (폭스뉴스는) 소수 보수 세력의 정치적 욕망을 대중적이고 보편적인 것처럼 연출할 수 있었다"고 분석한다.
회화나무. 476쪽. 2만2천 원.
'한번은 불러보았다' -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
아프리카 출신 D씨는 클럽에 갔다가 입장을 거부당했다. 수단 출신 C씨는 한 호텔과 도급계약을 맺은 세탁업체에서 채용을 거절당했으며 인도 출신 귀화인 A씨도 피부색 탓에 직장에서 동료 교사에게 모욕당했다. 모두 검은 피부색 때문이었다. 피부색에 따른 차별뿐 아니라 문화적 차별도 존재한다. 한국에 사는 중국인 '화교'에 대한 차별이 대표적이다. 국민 상당수가 중국 음식은 즐겨 먹으면서도 여전히 화교를 '짱깨'와 같은 멸칭(蔑稱)으로 부른다. 화교는 100년 이상 한국에 뿌리를 내리고 살았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이방인 취급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인종적·문화적 차별은 언제부터, 왜 발생한 것일까?
최근 출간된 '한번은 불러보았다'(위즈덤하우스)는 근현대 한국인의 인종차별과 멸칭의 역사를 탐구한 대중 연구서다. 저자 정회옥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개항기부터 시작된 변형된 오리엔탈리즘이 우리 문화에 깊이 스며들어 인종주의를 강화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오리엔탈리즘은 에드워드 사이드의 저서 '오리엔탈리즘'에서 연유한 개념으로, 제국주의적 지배와 침략을 정당화하는, 서양의 동양에 대한 왜곡된 인식과 태도 등을 가리킨다. 저자에 따르면 한국식 인종주의는 1876년 개항과 함께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시작됐다. 당시 서재필, 유길준 등 개화파는 서구의 위계적 인종주의를 진지한 성찰 없이 그대로 수용했다. 이들 엘리트 계층은 독립신문 등 근대적 매체를 창간했고, 이를 통해 대중도 근대 관념인 인종주의를 접했다. 예컨대 서재필·윤치호가 만든 독립신문 사설을 보면 국가를 문명화 정도에 따라 등수를 매기고 위계화한다. "잉글랜드·아메리카·프랑스·독일은 1등 문명국, 일본·이탈리아·러시아·덴마크는 개화국, 대한제국·청국·태국·이집트 등은 반개화국이다."왜곡된 인종주의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더욱 강화했다. 일본은 한국의 역사와 전통 등을 모두 열등한 것으로 치부했고, 이는 한국인의 의식에 패배감, 수치감, 죄의식, 보상 욕망을 심어줬다. 친일 지식인 이광수는 한국민의 성격적 결함 등을 제시하며 민족을 개조해야 한다고까지 얘기했다. 인종주의의 부상 속에 민족주의도 형성됐다. 역사가 신채호 등이 앞장서 외부에 가해지는 폭력에 대응하고 내부 단결을 강화하고자 민족주의 담론을 꺼내 들었다. 이후 민족주의는 식민지 해방, 근대국가 건설, 분단 극복과 통일, 경제성장, 세계화 추진 등으로 외피를 갈아입으며 한민족 문화에 공고히 뿌리내렸다. 그러나 이는 혈통을 중시하고 동질성과 순수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점에서 배타적 민족주의의 단초가 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이 지점에서 알제리 출신 포스트식민주의 사상가 프란츠 파농을 언급하며 식민지배의 부정적 영향을 설파한다. 파농은 '검은 피부 하얀 가면'에서 앤틸리스 제도 흑인들이 그들을 지배하는 백인들의 사고방식마저 닮아간다고 비판했다. 파농에 의하면 앤틸리스 제도 흑인들은 학교에서 백인이 야만인에 관해 쓴 내용을 공부할 때 세네갈의 흑인을 떠올렸다. 자신들은 절대 흑인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앤틸리스 제도의 흑인처럼 우리도 자기 자신은 황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서, 동남아시아인만 황인이라고 착각하고 있는지 모른다"고 비판한다. 그는 "오늘날 한국인은 백인을 모방하는 동시에, 같은 인종이지만 경제성장이 더딘 동남아시아인을 멸시하는 태도를 보인다"며 "서구중심주의 속에서 형성된 오리엔탈리즘을 한국식으로 변용하는 우리의 모습을 '복제 오리엔탈리즘'이라고 불리기도 한다"고 설명한다. 이어 "우리는 150여 년 전부터 지독한 인종주의자였다"며 "식민지배의 경험을 통해 '민족'이라는 전통을 만들었다면, 이제는 '관용'과 '환대'의 전통을 만들 차례"라고 강조한다.
272쪽. 1만7천원.
돈의 사이클
최근 미국 금리 인상,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세계 경제가 긴축으로 향하며 비관론이 퍼지고 있다. 이 같은 비관론은 2000년대 아파트 거품이 꺼졌을 때,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덮쳤을 때도 팽배했다. 당시 대부분 사람이 더 이상 기회는 없을 것이라면서 돈 공부를 그만뒀다. 그 와중에도 다음 투자를 준비한 사람들은 결국 팬데믹 전후 호황에 올라타서 부자가 됐다. 준비하는 사람에게 불황은 ‘터닝 포인트’다. 하지만 같은 상황을 두고도 서로 다른 경제 전망을 펼치는 일은 예사다. 집값이 가파르게 오를 때 어떤 경제학자는 서울 아파트는 이미 너무 비싸다면서 집을 팔라고 말한다. 반면 또 다른 전문가는 오늘이 제일 싸다고 주장하며 집을 사라고 한다. 기초 지식이 없는 사람이라면 정보의 홍수 속에서 우왕좌왕하다가 기회를 놓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저자는 경제의 흐름이 반복되기 때문에 이 사이클을 이용하면 소중한 재산을 지키고 늘리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고 조언한다. 이 책에는 불황과 호황 속에서 망하거나 기회를 잡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오늘날 경제를 만든 과거 사이클의 반복을 통해 투자 기회를 전망한다. 또 본격적인 투자의 세계로 들어가기 전 배경지식을 쌓기에 충분할 뿐만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경제 이론이 현실 경제에서 어떻게 작동했는지 알려준다. 특히 국내 독자들이 접하기 쉬운 정보를 활용해서 집필했기 때문에 실제 투자에서 떠올릴 수 있는 많은 영감을 효과적으로 제공한다. 이 책은 투자 초보가 반드시 알아야 할 정보와 오랜 투자자조차 종종 망각하는 경제 사이클의 정수만을 담았다. 자본주의 역사에서 반복된 호황과 불황을 분석해서 다음 투자의 기회에 올라타는 방법을 제시한다.
이재범 지음ㅣ위즈덤하우스ㅣ216쪽ㅣ1만8000원
실리콘밸리에선 어떻게 일하나요
MZ세대는 잘 알려진 대로 권위적이거나 보수적인 조직문화를 꺼리고, 중요한 일에 참여할 기회와 평가의 공정함을 중시한다. 평생 여러 커리어 관리가 일반적 현상이 돼가는 만큼 평균 근속연수도 짧아지고 있다. 많은 기업이 이 같은 변화에 맞춰 조직문화와 일하는 방식을 바꾸려 고민하는데, 구체적 방법론에서 막힌다.
책 '실리콘밸리에선 어떻게 일하나요?'(더퀘스트)는 메타전 페이스북)에서 사원부터 신규사업 리더까지 경험한 한국계 미국인 크리스 채가 구체적인 노하우를 공개한다. 저자는 메타 본사에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입사해 실무자로서 다양한 프로젝트들을 성공으로 이끌며 팀장, AI팀 신규사업팀의 수석팀장, 메타 1호 디자인 전략가까지 조직의 성과를 이끄는 관리자 역할을 수행하며 약 7년간 근무했다.
10년에 한 번씩 갖는 안식년을 계기로 올해 한국에 방문했을 때 실리콘밸리 조직문화와 일하는 방식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고,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자 이 책을 썼다. 자는 이 책에서 실리콘밸리 조직문화를 7가지로 정리하고 해당 문화에서 발생할 수 있는 잠재적 문제나 유의사항들을 짚어준다. 메타에서 경험한 실제 사례와 에피소드도 들려준다.
수학은 어떻게 문명을 발전시켜왔을까
수학은 어떻게 문명을 만들었는가
옷의 말들
알렉산드라 슐먼 지음. 김수민 옮김.
패션지 '보그' 창간 이래 가장 오랜 기간 편집장을 지낸 저자가 옷과 삶에 관해 쓴 에세이다. 옷은 단순히 천 조각 이상이다. 나름의 기능성도 있다. 아이를 돌볼 때는 편한 옷이, 권위 있어 보이고 싶을 때는 질감 좋은 재킷이 좋다. 추억도 환기한다. 좋은 날 입었던 옷은 그날의 기억도 떠오르게 한다.
옷은 사회 변화도 담는다. 처음에는 남성 아이템이었던 타이츠는 여러 단계를 거쳐 지금은 여성의 전유물이 됐다. 책은 이렇게 방 한구석에 있는 옷장 속 옷이 어떻게 우리가 사는 세계와 연결돼 있는지를 보여준다. 저자는 이 과정에서 여성의 일과 삶, 살면서 얻는 다양한 정체성, 사회 변화, 개인의 실패와 성공을 기록한다. 또한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에 관해서도 얘기한다. 어떻게 삶의 중요한 순간을 통과하고, 실패를 흘려보내야 했는지, 결정이 필요한 순간 올바른 결단을 내렸는지를 묻는다. 그리고 질문한다. 과연 우리가 선택하고, 입어온 옷으로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슐먼의 글은 옷에 대한 이야기 같지만 결국에는 삶에 대한 이야기다.
현암사. 320쪽. 1만6천원.
에라스무스 평전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정민영 옮김.
오스트리아 출신 소설가이자 뛰어난 전기 작가인 저자가 '우신예찬'으로 유명한 르네상스 시대 지식인 에라스무스의 일대기를 기록한 책. 종교전쟁의 혼돈 속에서 모든 극단적 주장을 거부하고 자유와 평화를 지키려 했던 에라스무스의 삶을 객관적으로 전한다. 츠바이크는 이성과 계몽의 힘으로 인류의 화합을 이루려는 에라스무스의 숭고한 정신과 함께 위험을 피하고자 어느 편에도 서지 못했던 그의 소심함도 동시에 보여준다. 탁월한 이성의 힘으로 광기의 시대를 헤쳐나갔지만, 결정적인 순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 점이 에라스무스의 비극이라고 저자는 평가한다. 1997년과 2006년 출판됐다가 절판된 책으로, 이번에 새롭게 번역해 재출간됐다. 출판사 측은 "오역을 바로잡고, 문장을 새롭게 다듬었다"고 밝혔다.
원더박스. 280쪽. 1만8천원.
디지털 트렌드 2023
이 책은 불황을 뛰어넘기 위한 핵심 기술을 모두 담았다. 특히 슈퍼앱, 마이데이터, 클라우드, 디지털재생, OTT 등 10가지 디지털 전략을 제시한다. 제조업계에서는 이미 실물 모형을 만드는 대신 디지털 트윈을 활용하며, 보호 무역을 뚫기 위해 디지털 재생으로 ESG를 강화하기도 한다.
작가의 방
알렉스 존슨 지음. 이현주 옮김.
영국 소설가 조지 오웰은 마지막 소설 '1984'를 쓰고자 런던을 떠나 스코틀랜드의 외딴섬을 찾았다. 그가 3년간 머문 농가에는 전화기가 없었고, 전기와 온수도 들어오지 않았다. 추위와 혹독한 환경 속에서 그는 오로지 글 쓰는 데만 용맹정진했다. 마침내 '1984'라는 걸작을 내놓았으나 지병이 악화해 출간 이듬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글쓰기에 필요한 최적의 환경을 고심한 이는 비단 오웰뿐 아니다. 호텔, 서재, 카페 등 작가마다 선호하는 장소는 제각각이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 등에서 기자로 일했던 저자는 작가의 영혼과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창작 공간으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저자는 버지니아 울프의 오두막에 앉아 보고, 제인 오스틴의 문구함을 열어 본다. 호텔, 커피숍, 비행기 등 거의 모든 곳에서 글을 썼던 마거릿 애트우드의 창작 공간도 생각해본다. 책은 영국 전원마을에서 자연을 벗해 글을 쓴 토머스 하디, 벚꽃 동산 별채에서 정원을 내려다보며 글을 썼던 안톤 체호프, 응접실에 모여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아이디어를 공유했던 브론테 자매 등 창작 공간과 작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저자는 서문에서 "작가의 공간을 방문하는 것은 작가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부키. 284쪽. 1만7천원.
배 타고 떠나는 여행
마고 린 | 꿈틀 | 14,000원 중국 공장에서 만들어진 책이 홍콩 항구에서 출발해 태평양, 파나마 운하, 대서양을 지나 뉴욕에 도착하는, 한 달 동안의 항해 이야기. 한 달 동안의 항해가 순탄하지만은 않다. 거센 파도에 흔들리기도 하고, 화물들을 단단히 묶어 두지 않으면 바닷속으로 떨어져 버리기도 한다. 또한 항해 이야기와 함께 다양한 반대말도 배울 수 있다.
한글의 탄생
일본인 한글학자 노마 히데키의 ‘한글의 탄생’이 출간 10년 만에 새로 나왔다. 이 책은 이제 동아시아를 넘어 세계 문화 속에 자리 잡은 한글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살펴본다. 언어학자인 저자는 '인간에게 문자란 무엇인가'라는 보편적 질문을 통해 한글에 대해 통찰하며, 한글 창제 이전의 문자 생활, 한글의 창제 과정, 한글이 한반도에서 '지'(知)의 판도를 뒤흔들어 놓은 과정, 미적 형태의 발전에 이르기까지 한글를 입체적으로 살펴본다. 저자는 세종과 집현전 학자들에 의해 이뤄진 '한글의 탄생' 과정을 언어학적으로 재현한다. 귓가에 들려오는 자연의 소리로부터 '음'의 단위를 추출해 내고, 이들을 각각 자모로서 형상화해 설계해 내는 과정을 설명한다.
지구별 인간
아쿠타가와상, 노마문예신인상, 미시마유키오상 등 권위 있는 문학상을 연이어 휩쓸며 현대 일본문단의 대표 작가로 부상한 무라타 사야카. 특유의 도발적인 상상력과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들며 독자를 매혹해온 그가 ‘지구별 인간’으로 한국 독자와 만난다. 비슷한 상처와 결핍을 지닌 아웃사이더들의 ‘지구별’ 생존기를 그린 작품. 강렬한 이미지와 선명한 비유가 조화를 이뤄 독보적인 매력을 자랑한다. 출간 직후 ‘편의점 인간’을 넘어서는 뜨거운 반응이 이어졌고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8개국에서 앞다퉈 번역 계약을 체결하는 등 초국경적 성공을 거뒀다. BBC 선정 ‘2020년 최고의 책’, ‘뉴욕타임스’ 선정 ‘2020년 주목받는 100권’에 이름을 올리며 전 세계에 다시금 무라타 사야카의 명성을 증명하기도 했다.
무라타 사야카 지음 / 비채 펴냄
역사와 유토피아
나치 독일의 멸망으로 루마니아가 소련의 위성국으로 사회주의국가가 되어버리자, 파리에서 무국적자로 머물러야 했던 에밀 시오랑은 루마니아어와 이별하고 프랑스어로 글을 쓰기로 결정한다. ‘역사와 유토피아’는 1960년에 출간된 그의 네 번째 프라스어 작품으로 상까지 수상하며 독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첫 에세이 ‘두 유형의 사회에 대하여’는 루마니아 철학자 콘스탄틴 노이카에게 보낸 편지로, 자본주의 사회와 공산주의 사회를 비교하는 것으로 시작해 권력과 역사의 흐름에 대한 성찰로 이어진다. ‘러시아와 자유의 바이러스’에서 그는 러시아, 러시아의 역사, 발전, 그리고 그가 ‘자유의 미덕’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타협하지 않는 시선을 보여준다. ‘폭군의 학교에서’는 스탈린과 히틀러의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그는 보기 드문 명쾌함과 설득력있는 논리로 폭군과 폭정에 대해 말한다. 그리고 ‘원한의 오디세이아’에서는 ‘이웃을 미워하는’, 즉각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복수를 하려는 우리 모두의 뿌리 깊은 꿈을 조사한다. 마지막 ‘황금기’에서는 수많은 시인과 사상가의 유토피아인 성경의 에덴동산인 ‘황금기’의 개념을 분석한다. 논쟁의 여지가 있는 글들이지만 그러함에도 아이러니와 독설과 풍부한 지식과 무해한 사상을 구사한 그의 문명 비평을 독자들에게 권한다.
에밀 시오랑 지음, 김정숙 옮김 /
우리는 왜 죽어야 하는가
한 살 두 살 나이가 늘면 체력이 떨어지고 마음도 변한다. 서서히 다가오는 노화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모든 생물이 맞이하는 죽음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만, 동시에 '왜 늙는가', '왜 죽는가'에 대한 의문은 계속 남게 된다.
일본 도쿄대 교수인 저자(고바야시 다케히코)는 게놈 재생의 메커니즘을 연구하는 생물학자다. 이 책에서 그는 우리에게 두렵지만 마냥 외면할 수 없는 죽음의 의미를, 철학·종교의 시각 대신 생물학의 관점에서 풀어낸다. 총 5장으로 구성된 책은 생물이 탄생한 계기부터 생물과 인류가 어떤 방식으로 죽거나 멸종하는지, 인류와 AI와의 공존 공생의 미래까지 죽음과 관련된 다양한 주제를 어렵지 않은 문장으로 친절하게 설명한다.
저자는 ‘생물은 왜 죽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진화가 생물을 만들었다’는 명제에 있다고 말한다. 46억 년 전 지구가 탄생한 이후 수억 년 걸려 태어난 단 하나의 세포가 모든 생물의 시조가 되었다. 세균과 같은 원핵세포에서 미토콘드리아·엽록체와 공생하는 진핵세포로 변화했고, 지금으로부터 약 10억 년 전 다세포 생물이 나타났다. 이후 오래된 생물이 죽고 새 생물이 탄생하는 과정에서 ‘선택과 변화’를 핵심 원리로 하는 진화라는 시스템이 만들어졌고, 이런 진화 덕분에 인간과 같은 생물도 출현했다.
요컨대 죽음도 진화가 만든 생물 시스템의 일부라는 설명이다. 나아가 저자는 “생물은 우연히 이기적으로 태어나서 공공적으로 죽는다”고 말한다. 지금 존재하는 생명이 죽어 더 다양하고 더 큰 가능성을 가진 생명이 탄생하기 때문이다. 이런 생물학적 관점에서 보면 죽음은 ‘나쁜 일'이 아니라 ‘필요한 일'이다. 현재 살아있는 생물에게 죽음은 삶의 결과이자 끝이지만, 기나긴 생명의 역사에서 보면 존재의 ‘원인’이며 새로운 변화의 ‘시작’이란 설명이다. 책의 후반부에서 저자는 삶과 죽음이 거듭되는 무대인 지구를 인간 스스로 파괴하지 않고 지켜나가기 위해 해야 할 일, 생물 종의 다양성을 유지해야 할 이유 등에 대해 역설한다. 일본에서 현재 16만부 이상 판매를 기록하고 있는 베스트셀러다.
오지랖 넓은 수학의 여행
‘오지랖 넓은 수학의 여행’(이규봉 지음 / 경문사)은 수학과 교수로 재직하던 저자가 삶에서 겪은 다양한 이야기를 엮은 인문학 에세이다. 부등식과 무한의 세계, 비선형오차와 나비효과, 양의 지수함수와 가족계획, 음의 지수함수와 원자력발전 등등 수식으로 표현하는 이야기의 본질에는 ‘다양성’과 ‘생명 존중’이 있다. 특히 학교에서 배웠던 수학 공식으로 개인의 삶, 사회문제, 종교와 예술, 철학과 사상을 풀어낸 ‘행복방정식’이 흥미롭다.
‘다양성’을 주제로 한 1부에서는 사회·환경·음악에 관련한 주제를 다루었고, ‘생명 존중’을 주제로 한 2부에서는 사회·환경·종교·철학과 관련한 주제를 다뤘다. 부록으로 각 장에서 소개한 공식에 대해 설명하는 ‘수학 좀 더 알아보기’, 피타고라스 방법을 이용해 기타와 비슷한 악기를 만드는 ‘자와 컴퍼스로 기타 만들기’를 담았다.
고문서에 담긴 조선의 일상
옛 기록에는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삶과 일상, 그리고 역사가 오롯이 남아있다. 궁궐에 살던 왕부터 시골 노비에 이르기까지 저마다의 삶을 살아간 이야기는 시간을 뛰어넘어 흥미롭게, 때로는 감동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책은 2009년부터 한국학중앙연구원 온라인 소식지에 연재된 글 51개를 추려 엮은 것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은 조선 왕실에서 보관하던 왕실 도서 12만여 책과 전국에서 수집한 민간 고문헌 17만여 점이 소장돼 있는데 이 중에서 주목할 만한 자료를 엄선했다. 조선 시대 공무원 시험 기록, 국왕이 허용한 '투잡'(two-job) 증서, 새해맞이 신년 운세, 일기 등 옛사람들의 삶을 다채롭게 그려낸 점이 주목할 만하다.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288쪽. 1만8천원.
일제 사진엽서, 시와 이미지의 문화정치학 = 최현식 지음.
일제시대에는 14㎝ x 9㎝ 크기의 작은 직사각형 종이 안에 식민지 조선의 인물, 자연, 풍속, 문화 등을 담아 대량으로 발행된 '사진엽서'가 있었다. 그 안에는 경성과 평양의 거리가 담겼고 경주나 금강산 관광 모습, 조선의 소년 소녀, 여성과 남성 등 당시 조선을 살아가는 면면이 반영됐다. 책은 사진엽서가 서로의 소식을 주고받는 일반적 역할도 했지만, 전통의 '조선적인 것'과 근대의 '일본적인 것'을 대비시켜 제국과 식민지를 차별 짓는 기능도 했다고 짚는다. 책은 특히 이미지, 시가, 산문이 함께 실린 복합적 형태의 사진엽서를 조명하면서 이를 관통하는 문화 정치학의 본질과 특성, 방법 등을 차근차근 검토한다. 다양한 사진엽서를 통해 당시 시대 상황과 그 안에 담긴 식민지 이념 등을 엿볼 수 있다.
성균관대학교출판부. 768쪽. 4만원.
화폐의 추락
‘포브스’의 CEO와 통화정책 전문가가 공동으로 인플레이션의 진실과 대안을 다룬 책이 나왔다. 저자 네이선 루이스는 통화 정책과 경제사 분야의 최고 권위자다. 현재는 투자 관련 뉴스레터 ‘폴라리스 레터’(Polaris Letter)를 발행하고 있다. 인플레이션을 단순한 물가 상승이 아니라 “돈이 가치를 잃을 때 발생하는 가격의 왜곡”이라고 정의한다. 그러면서 “돈의 가치를 무너트려서 부를 일군 국가는 하나도 없었다”고 꼬집는다. 이 책은 총 6장에 걸쳐 화폐적 인플레이션의 역사를 살펴보고 그 속에서 실질적인 해결책을 제시한다. 또 인플레이션 상황에서 자산을 지키기 위한 단계적 해법을 비롯한 투자 비결을 현실적인 관점에서 소개한다.
1장에서는 인플레이션의 실제 의미와 사람들이 생각하는 인플레이션의 차이를 되짚는다. 2장에서는 역사적으로 악명 높은 인플레이션 사례들을 살펴보며 그 당시 화폐 찍어내기에 급급했던 정부 정책의 무엇이 문제였는지 짚어준다. 3장에서는 경제전문가들의 주장과 달리 왜 모든 수준의 인플레이션이 궁극적으로 나쁜지를 설명한다. 4장에서는 저자들이 대안으로 제시하는 ‘금 본위제’를 다룬다. 5장에서는 인플레이션 시기의 투자 지침을 제시한다. 6장에서는 경제적 번영과 안정을 위해서 새로운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252쪽ㅣ1만9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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